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하마드 알리 (문단 편집) ==== VS [[조 프레이저]] =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IM4rN_JvADM)]}}} || || {{{#000000,#ffffff '''경기 시작은 17분 20초부터.'''}}} || 알리와 포먼의 경기가 역사적 의미에서 최고의 명경기라면, 내용의 치열함에 있어서는 조 프레이저와의 3차전이 권투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꼽힌다. 이 경기는 경기 전 신경전도 치열했고 경기 내용도 대단했는데, 경기장 냉방 시설마저 고장나서 선수들 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마저 지칠 대로 지쳤던 경기다. (다양한 풋워크, 다양한 연계 기술 및 콤보, 콩콩이스텝을 통한 스텐스 변환 및 카운터콤보, 알리스텝, 알리셔플, Rope-a-dope 등 알리의 모든 것을 불태운 경기이기도 하다, 말그대로 마닐라의 전율!!!) 이 둘은 세 차례나 맞붙으며 복싱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. 프레이저와 알리의 1차전,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 결과는 프레이저의 판정승.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.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프레이저가 조지 포먼에게 2라운드에만 6번의 다운을 당한 끝에 KO 패배로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고, 이후 알리가 그 포먼을 무너뜨리며 다시 챔피언이 된다. 이후 알리는 프레이저를 상대로 두 번의 타이틀 방어전을 치뤘고, 모두 승리한다. 2차전은 알리의 만장일치 판정승이었고, 3차전에선 알리의 14라운드 TKO승. 전적 2승1패로 완벽하게 설욕한 것이다. 대중과 언론앞에 나서서 흥미 유발을 즐겼던 알리와 달리 프레이저는 별 다른 마케팅을 내세우지 않았다. 그리고 프레이저는 1975년 10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알리와 경기를 앞두고 이처럼 기도했다. '''"신이시여, 저 녀석을 때려눕힐 힘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."''' 덤으로 프레이저가 챔피언이 된 후 알리가 베트남 전쟁 참전 거부로 인해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자 프레이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면담[* 당시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의 위상은 엄청났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일대일 면담도 그렇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. 닉슨도 프레이저의 요청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이며, 곧 알리가 복귀할 수 있을거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줬다.]에서 알리의 라이선스를 다시 발급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며 여러 방면으로 그를 도우기도 했다. 허나 알리는 프레이저를 '백인에게 굴종적인 흑인'이라고 말하며 그를 탐탁스럽지 않게 여겼다.[* 베트남 전쟁 거부로 인해 선수 자격이 박탈된 것이 백인 권력에 의해서인데 그 선수 자격을 다시 발급받는 것도 백인 권력에 의해서라는 점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으로 보인다.] 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선수 생활 내내 나빴고, 둘 다 은퇴 후 노인이 되어서야 화해했다. 이들의 혈투는 '마닐라의 전율'(Thrilla in Manila)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. 알리가 프레이저와의 3차전을 앞두고 "이 경기는 마닐라의 전율이 될 것이다"라며 '스릴라' + '마닐라'로 라임을 맞추는 입담을 선보였고, 이것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경기 이름을 '스릴러 인 마닐라'로 부르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